중년의 여인은 고유의 향기가 있다.

샤넬 5의 화려함이 아니라.
길섶의 민들레꽃에서 피어나는 눈으로 맡는 고운 향기가 있다.
그런데 그 향기를 스스로 부끄러워하고 감추려 들어 안타깝게 한다.

중년 여인은 새댁을 지나 할머니로 불릴 때 까지의 여인이다.
그러나 이건 다분히 주관적인 것이니까.
자기가 중년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것이지 그 기준을 그어줄 수는 없다.

말하자면 시소의 왼쪽 끝이나 오른쪽 끝이 아니고 중심을 잡아주는 가운데 있는 중간 세대이다.
중년 여인은 대부분 가정의 중심에 머무르면서 가족들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맡는다.

여인으로서도 원숙한 경지에 이르러 남자의 부족함을 인내로 메울 줄 알고 지친 몰골을 불쌍하게 껴안고 다독거려 편히 쉬도록 해주는 고향과 같은 존재이다.
중년 여인은 마음만큼이나 풍성한 몸매에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몸집이 불어나서 모처럼 입고 나선 정장 차림이 어깨와 엉덩이 쪽이 약간 작은듯해도 전혀 낯설지 않고 정겹기까지 하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도시락을 챙겨 주느라 헝클어진 머리에 젖은 손을 앞치마도 없는 월남치마에 닦으며 종종걸음으로 바지런한 모습도 보기 좋고,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몸뻬 바지에 호밋자루 하나 들고 밭에 나가 뙤약볕에 그을린 얼굴도 정답다.

그러나 우리를 서글프게 하는 것은 몸매나 치장에만 매달리는 그런 여인을 아름다운 중년이라고 추켜세우는 허영들 때문에, 순진한 중년 여인들이 혼란에 빠져 고유의 고운 향기를 잃어버리는 점이다.

세월을 거슬러 처녀 때의 가녀린 몸매로 만들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모습은 애처롭다.
찢어진 청바지도 걸쳐보고 짙고 요란한 화장으로 꾸며 보지만 오히려 눈 찌푸림을 지나 혐오감까지 느끼게 만든다.

이처럼 안팎이 언밸런스한 한계는 하늘의 뜻임에도 엉뚱하게도 자기혐오를 불러 우울증에 빠지게 하고 공연히 중심을 잃고 허우적대도록 만든다.
정말 아름다운 중년 여인은 이런 유혹에 흔들리지 않고 현재 자신의 모습에 초조하지 않은 의지를 지닌 여자이다.
내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중년 여인상이 바로 이런 여자를 말하고 싶습니다,


향긋한 꽃 내음이 코끝을 스치고 바람결에 날아온 임의 향기. 온몸과 마음에 가득 담깁니다.

으스스러니 시렸던 지난겨울 따스한 봄이 찾아와 마음 길 여미는 곳 살며시 여닫아 봅니다.

온갖 향기 만발한 봄들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잔잔한 꽃이 마음과 가슴을 사로잡습니다.

햇살 가득한 창가에 앉아 연둣빛 감도는 산등성이에 아지랑이 가물거립니다.

가슴으로 들려오는 향긋한 꽃내음과 그의 음성이 마음자리를 살알랑 흔듭니다.

봄 내음 풍기는 화단에 손수 옮겨둔 꽃나무가 따스한 봄 햇살에 춤을 춥니다.

봄으로 가는 길어 귀 여느 때보다 정겨워 손길 닿는 곳곳마다 사랑이 흐릅니다.

저마다 마음에 둥지를 틀고 봄빛 가득한 길섶에서 고운 마음 풍깁니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마주한 향기가 그윽하여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행복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아. 남은 세월 다정한 벗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