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네요

덥다고 너무 덥다고 
저리 가라고 밀어 보내지 않아도 
머물고 떠날 때를 알고 있는 여름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나 봅니다. 

잠깐 머물다 금세 떠날 것을 알면서도 
호들갑을 떨며 아우성을 치던 우리네는 
언제 그랬냐며 정색하고 가을을 반기겠지 

짧디짧을 가을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 
마치 가을이 영원히 내 곁에 있을 것처럼 
생각하다가, 언제 떠났는지도 모르고, 

어느샌가 입김 호호 불며 오는 추위를 
나무라며, 문지방 너머 목 길게 빼고 
봄이 오기를 마냥 기다릴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이만 먹는다고 세월이 
너무 빠르다고 투덜거려 보고 용기없어 
하지 못했던 것에 미련도 되씹어 보면서 

커다란 나이테 하나를 또 끙끙 둘러메고 
앉아, 문밖 건너 진달래 붉은 향기 가슴에 
밀려들면, 서러워 눈물 흘릴지도 모르겠다. 

그냥, 조용히 흐르는 세월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가만히 두고 계절을 즐기며 
덥든 춥든 가볍게 하루 또 하루를 그냥 살아 
주면 그것이 행복이고 참살이가 아니련가요, 

망대 열매를 따 먹고 살아도 이승이 낫다는데, 
지금 살아 숨 쉬고 생활하는 이곳이 천국이고 
낙원이 아니면 그 어디가 무릉이고 도원인가,